인물 › 여동빈(呂洞賓)

여동빈(呂洞賓)Lü Dongbin

자·도호
여암(呂巖), 동빈(洞賓), 순양자(純陽子), 회도인(回道人), 여조(呂祖), 부우제군(孚佑帝君), 순양연정경화부우제군(純陽演正警化孚佑帝君)
시대
당말오대(唐末五代)
생몰
전(傳) 798 — ?
유파
종려내단파(鍾呂內丹派)
역할
내단파(內丹派) 조사(祖師)팔선(八仙)
출신지
하중부(河中府) 융러(永樂, 지금의 산시山西 루이청芮城), 일설에는 푸저우(蒲州)
활동지
종남산(終南山), 여산(廬山, 도교 유적), 융러궁(永樂宮)

생애

여동빈(呂洞賓)은 이름이 암(巖)이고 자가 동빈(洞賓)이며 호는 순양자(純陽子)이다. 도교 내단 종려파(鍾呂派)가 받드는 조사(祖師)이며 팔선(八仙) 중 영향력이 가장 큰 인물로, 민간에서는 「여조(呂祖)」로 존칭한다. 전하기로는 당말(唐末) 하중부(河中府) 영락(永樂) 사람이며, 혹은 정원(貞元) 14년(798)에 태어났다고도 한다. 당(唐) 함통(咸通) 연간 진사에 응시하였으나 급제하지 못하였고, 장안(長安)을 유력(遊歷)하다가 종리권(鍾離權)을 만나 「황량일몽(黃粱一夢)」(일설에는 「십시十試」)을 거쳐 제도(濟度)되어 종남산(終南山)에 들어가 수도하여 금단(金丹)의 도를 얻었다. 북송(北宋) 초에 이미 그의 여러 현화(顯化) 전문(傳聞)이 유포되었으니, 『송사(宋史)·진단전(陳摶傳)』에는 「관서(關西)의 은사(隱士) 여동빈은 검술이 있어 백여 세에도 동안(童顏)이다」라는 언급이 있다. 북송 중기 이후 그에 대한 신앙이 급속히 보급되어 악양루(岳陽樓)·여산(廬山)·영락진(永樂鎭) 등 여러 곳에 전설이 있으며, 송(宋) 휘종(徽宗)은 「묘통진인(妙通眞人)」으로, 원(元) 세조(世祖)는 「순양연정경화진군(純陽演正警化眞君)」으로, 무종(武宗)은 「순양연정경화부우제군(純陽演正警化孚佑帝君)」으로 가봉(加封)하였다. 전진도(全眞道)는 그를 북오조(北五祖) 중 하나(순양조사純陽祖師)로 받들며, 영락궁(永樂宮)이 바로 그의 사묘(祠廟)이다. 여동빈으로 제명(題名)된 저작이 매우 많은데, 『여조전서(呂祖全書)』 『고효가(敲爻歌)』 『백자비(百字碑)』 『침원춘(沁園春)』 단사(丹詞) 등이 있으나, 대부분 후인이 가탁(假託)하였거나 부계(扶乩)를 통해 나온 것이다. 여동빈 신앙은 내단학·민간종교·문학희곡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공헌과 영향

  • 종려내단파(鍾呂內丹派)의 실질적인 상징적 인물로, 내단 남종(南宗)·북종(北宗) 모두에게 공경받음
  • 전진도(全眞道) 북오조(北五祖) 중 한 사람이며, 영락궁(永樂宮) 등 궁관에서 모시는 주신(主神)임
  • 「여조(呂祖)」 신앙은 도교의 신선 숭배 중 민간에서 가장 널리 퍼진 것 가운데 하나임
  • 제명(題名)된 단시(丹詩)·단사(丹詞)가 매우 널리 전해져 내단 문학에 영향을 끼침

저작

  • 『순양진인혼성집(純陽眞人渾成集)』(제명)
  • 『여조전서(呂祖全書)』(청대 사람이 편집)
  • 『백자비(百字碑)』(제명)
  • 『고효가(敲爻歌)』(제명)

전설

전설: 황량일몽(黃粱一夢), 비검참황룡(飛劍斬黃龍), 삼취악양루(三醉岳陽樓), 하선고(何仙姑)를 제도한 일, 「개가 여동빈을 무는」 이야기 등이 전하는데, 모두 전설과 민간 이야기에 속한다.

참고 문헌
  1. 《宋史·陈抟传》
  2. 《历世真仙体道通鉴》
  3. 维基百科:吕洞宾
  4. 卿希泰主编《中国道教史》第二卷
  5. Paul R. Katz, *Images of the Immortal: The Cult of Lü Dongbin at the Palace of Eternal J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