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 육수정(陸修靜)

육수정(陸修靜)Lu Xiujing

자·도호
원덕(元德), 간적선생(簡寂先生), 단원진인(丹元眞人)
시대
유송(劉宋)
생몰
406 — 477
유파
영보파(靈寶派), 천사도(天師道)
역할
남천사도(南天師道)의 개혁자도장 편찬자(道藏編纂者)과의대사(科儀大師)
출신지
오흥 동천(吳興東遷, 오늘날의 저장 후저우)
활동지
여산(廬山, 도교 유적), 모산(茅山, 구곡산句曲山)

생애

육수정(陸修靜)은 자가 원덕(元德)으로, 남조 유송(劉宋)의 저명한 도사이며 오흥(吳興) 동천(東遷) 사람으로 삼국 오(吳)의 승상 육개(陸凱)의 후예이다. 젊어서는 유학을 종주로 삼았으나 이후 집을 떠나 수도하며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고 도경(道經)을 찾아 모았다. 원가(元嘉) 말년(약 453) 건강(建康)에서 약을 팔았는데 송 문제(文帝)가 그 명성을 듣고 불러들였다. 이후 태초(太初)의 난을 피해 남쪽으로 유람하다가 대명(大明) 5년(461) 여산(廬山) 간적관(簡寂觀)에 은거하였다. 태시(泰始) 3년(467) 송 명제(明帝)가 그를 건강으로 맞아들여 북쪽 교외에 숭허관(崇虛館)을 세우고 도경을 널리 수집하여 '삼동(三洞)을 총괄'하게 하였으며, 태시 7년(471)에는 『삼동경서목록(三洞經書目錄)』을 편찬하여 도경 1,228권을 저록(著錄)하였으니, 이는 도교사상 최초의 경서 총목(總目)으로 '삼동' 분류는 후세 『도장(道藏)』 체례의 근본이 되었다. 그는 또한 천사도 조직을 정돈하고 재계(齋戒) 의범을 제정하여 『영보수도의(靈寶授度儀)』 『태상동현영보중간문(太上洞玄靈寶眾簡文)』 등 과의서(科儀書) 백여 권을 편찬함으로써 도교 재초(齋醮) 제도를 완비하는 데 이르게 하였다. 원휘(元徽) 5년(477)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는 '간적선생(簡寂先生)'이고, 북송 때 '단원진인(丹元真人)'에 봉해졌다. 구겸지와 더불어 남북으로 병칭되며, 남조 도교의 정돈과 제도화를 이끈 핵심 인물이다.

공헌과 영향

  • 『삼동경서목록』을 편찬하고 '삼동' 분류를 창안하여 도장의 시조가 됨
  • 남방 천사도를 정돈하고 택록(宅錄), 도민(道民) 등록 등의 제도를 제정
  • 영보경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재초 과의를 제정하여 영보파 종사로 받들어짐
  • 『육선생도문과략(陸先生道門科略)』 등을 저술하여 도교 조직과 계율을 규범화

저작

전설

'호계삼소(虎溪三笑)'는 육수정이 도연명(陶淵明), 혜원(慧遠)과 여산에서 회담하였다는 이야기이나, 세 사람의 생몰 연대가 서로 맞지 않아 후세의 부회(附會)로 여겨진다.

참고 문헌
  1. 《宋书·隐逸传》(附)
  2. 《南史·隐逸传》
  3. 马枢《道学传》辑佚
  4. 维基百科:陆修静
  5. 卿希泰主编《中国道教史》第一卷
  6. 진국부(陳國符) 『도장원류고(道藏源流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