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백단(張伯端)Zhang Boduan
- 자·도호
- 평숙(平叔), 용성(用成), 자양진인(紫陽真人), 자양(紫陽), 오진선생(悟真先生)
- 시대
- 북송(北宋)
- 생몰
- 984 — 1082
- 유파
- 금단파남종(金丹派南宗)
- 역할
- 내단 남종(南宗)의 조사(祖師)단경 저자
- 출신지
- 태주 천태(台州天台, 오늘날의 저장 톈타이)
- 활동지
- 천태산(天台山)
생애
장백단(張伯端)은 자가 평숙(平叔)이며 훗날 용성(用成)으로 개명하였고 호는 자양(紫陽)이다. 북송의 저명한 내단가(內丹家)로 내단파 남종(南宗)에서 초조(初祖, 「남오조南五祖」의 으뜸)로 받든다. 태어난 해는 984년 또는 987년이라는 두 설이 있으며, 원풍(元豐) 5년(1082) 세상을 떠났는데 전하는 바로는 99세였다고 한다. 젊어서 진사 시험을 준비하며 삼교(三敎) 경전과 형법·서산(書算)·의복(醫卜)·천문·지리 등 여러 학문에 두루 통달하였으며, 한때 부(府)의 아전으로 있다가 「문서를 불태운(火燒文書)」 죄로 영남(嶺南)으로 유배되었다. 치평(治平) 연간(1064~1067) 육선(陸詵)을 따라 청두(成都)로 갔으며, 희녕(熙寧) 2년(1069) 청두에서 「진인(眞人)」(후대에 유해섬劉海蟾이라 전해짐)을 만나 금단(金丹)의 약물과 화후(火候)의 비결을 전수받아 마침내 『오진편(悟眞篇)』을 저술하였다. 이 책은 시사(詩詞) 형식(칠언율시 16수, 절구 64수, 서강월西江月 12수 등)으로 성명쌍수(性命雙修)와 선명후성(先命後性)의 내단 이론을 밝혔으며, 「몸을 정로(鼎爐)로 삼고 정기(精氣)를 약물로 삼으며 신(神)을 화후로 삼는다」고 주장하고 방문소술(旁門小術)을 배격하였다. 또한 「가송악부(歌頌樂府)」를 덧붙여 선종(禪宗)을 융섭(融攝)하였으니, 후대에 『참동계(參同契)』와 더불어 단경(丹經)의 양대 경전으로 병칭되었다. 이 밖에 『금단사백자(金丹四百字)』『옥청금사청화비문금보내련단결(玉淸金笥靑華秘文金寶內煉丹訣)』(제명題名) 등이 있다. 그의 법은 석태(石泰)에게 전해졌고, 설도광(薛道光)·진남(陳楠)을 거쳐 백옥섬(白玉蟾)에 이르러 남종을 이루었다. 원대에 「자양진인(紫陽眞人)」으로 추봉되었다.
공헌과 영향
- 『오진편』을 저술하여 내단의 「성명쌍수, 선명후성」 이론 체계를 확립함
- 내단 남종의 초조로, 그 단법이 석태·설도광·진남·백옥섬을 거쳐 전승됨
- 선종의 심성설을 내단에 융섭하여 삼교합일 내단학의 풍조를 엶
저작
- 『오진편(悟眞篇)』
- 『금단사백자(金丹四百字)』
- 옥청금사청화비문금보내련단결(玉清金笥青華祕文金寶內煉丹訣, 제명)
- 오진편습유(悟真篇拾遺)
전설
전설: 장백단이 일찍이 승려와 「출신(出神)」 겨루기를 하여 양저우(揚州)로 가서 경화(瓊花)를 꺾어 오는 시합을 하였는데, 승려는 해내지 못하고 장백단만이 해내어 성명쌍수의 우월함을 증명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득도 후 시해(尸解)하였다는 설도 있다. 모두 전설에 속한다.
- 《悟真篇·序》《悟真篇·后序》
- 翁葆光《悟真篇注序》
- 《历世真仙体道通鉴》
- 维基百科:张伯端
- 卿希泰主编《中国道教史》第二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