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홍(葛洪)Ge Hong
- 자·도호
- 치천(稚川), 포박자(抱朴子), 소선옹(小仙翁), 갈선옹(葛仙翁)
- 시대
- 동진(東晉)
- 생몰
- 283 — 343
- 역할
- 연단가(煉丹家)도교 이론가의약학자
- 출신지
- 단양 구용(丹陽句容, 지금의 장쑤 구용)
- 활동지
- 나부산(羅浮山), 거자오산(閣皂山)
생애
갈홍(葛洪)은 자가 치천(稚川)이며 스스로 포박자(抱朴子)라 호하였고, 동진(東晉) 단양(丹陽) 구용(句容) 사람으로 갈현(葛玄)의 종손(從孫)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였으나 집이 가난하여 땔나무를 베어 종이를 사서 공부하였으며, 정은(鄭隱)에게 금단(金丹)의 도를 배우고 또 장인 포정(鮑靚)에게도 배웠다. 태안(太安) 2년(303) 석빙(石冰)의 난을 평정하는 데 참여하여 복파장군(伏波將軍)에 제수되었다. 이후 교지(交趾)에서 단사(丹砂)가 난다는 말을 듣고 구루령(句漏令)이 되기를 청하여 자질(子姪)들을 데리고 광주(廣州)로 향하였는데, 자사(刺史) 등악(鄧岳)에게 붙들려 나부산(羅浮山)에 머물며 연단과 저술에 힘쓰다가 산중에서 세상을 떠났으니, 향년 61세였다(일설에는 81세로 363년에 세상을 떠났다고도 한다). 그가 지은 『포박자내편(抱朴子內篇)』 20권은 신선·금단·부록(符籙)·방술(方術)을 논하여 '신선은 배울 수 있다(神仙可學)'는 명제를 체계적으로 논증하고, 금단을 장생(長生)의 요체로 삼되 방중(房中)·행기(行氣)·도인(導引)·복약(服藥)을 함께 행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도사는 마땅히 "안으로 형신(形神)을 닦고 밖으로 사악함을 물리쳐야 한다"고 강조하여 충효(忠孝)를 근본으로 삼아 신선도교(神仙道敎)와 유가 윤리를 결합시켰으니, 이는 위진(魏晉) 신선도교 이론의 집대성이라 할 저작이다. 외편(外篇) 50권은 시정(時政)과 인사(人事)를 논하였다. 그 밖에 『신선전(神仙傳)』,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 『서경잡기(西京雜記)』(전傳함) 등을 지었다. 『주후방(肘後方)』에는 청호(靑蒿)로 학질(瘧疾)을 치료하는 법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투유유(屠呦呦)가 청호소(靑蒿素, 아르테미시닌)를 발견하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갈홍은 도교사에서 앞선 시대를 계승하고 뒤 시대를 여는 관건적 이론가로 평가된다.
공헌과 영향
- 『포박자내편(抱朴子內篇)』을 지어 위진 신선도교 이론을 체계적으로 총결하고 '신선은 배울 수 있다'는 명제를 논증함
- 다량의 금단방술(金丹方術)을 기록하여 중국 연단술과 화학사의 중요 문헌이 됨
- 『신선전(神仙傳)』을 지어 신선의 계보를 세움
-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을 지어 후세에 전해지는 중요한 의방서(醫方書)를 남김
- 유가와 도교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도교의 사회적 지위를 높임
저작
- 『포박자내편(抱朴子內篇)』
- 『포박자외편(抱朴子外篇)』
- 신선전(神仙傳)
-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
- 『은일전(隱逸傳)』(일실)
- 『서경잡기(西京雜記)』(전)
전설
전설: 갈홍이 나부산에서 연단하다가 시해(尸解)하였는데 안색이 살아 있는 듯하였고 시신을 들어 관에 넣으니 마치 빈 옷처럼 가벼웠다고 전해진다. 항주(杭州) 갈령(葛嶺)과 나부산 충허관(沖虛觀)에는 모두 그의 연단 유적이 남아 있다.
- 《晋书·葛洪传》
- 维基百科:葛洪
- 王明《抱朴子内篇校释》
- 卿希泰主编《中国道教史》第一卷
- Robert Ford Campany, *To Live as Long as Heaven and Ear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