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 왕상월(王常月)

왕상월(王常月)Wang Changyue

자·도호
원래 이름은 평(平), 호는 곤양자(昆陽子), 용문파(龍門派) 제7대 율사(律師), 포일고사(抱一高士)(순치제順治帝가 하사)
시대
명말청초
생몰
약 1594년(일설에는 1522년) — 1680
유파
전진도(全真道), 전진용문파(全眞龍門派)
역할
용문파 중흥조사(中興祖師)율사(律師)전계대사(傳戒大師)
출신지
노안(潞安) 창즈(長治, 지금의 산시山西 창즈)
활동지
베이징 백운관(北京白雲觀), 무당산(武當山)

생애

왕상월(王常月)은 산시(山西) 장즈(長治) 사람으로, 청초 전진 용문파(龍門派) 중흥의 조사(祖師)이다. 그의 자술에 따르면 젊어서 명사(名師)를 두루 찾아다니다가 왕옥산(王屋山)에서 조복양(趙復陽)을 만나 용문 계법(戒法)을 전수받아 용문 제7대 율사(律師)가 되었다. 순치(順治) 12년(1655) 베이징에 이르렀고, 이듬해 성지(聖旨)를 받들어 백운관에서 단을 열고 계를 전수하니, 초진(初真)·중극(中極)·천선(天仙)의 "삼단대계(三壇大戒)"를 잇달아 전하였고 계를 받은 자가 천여 명에 이르렀다. 순치제(順治帝)가 자의(紫衣)를 하사하고 "국사(國師)"로 존숭하였다. 강희(康熙) 연간에 그는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난징·항저우(杭州)·후저우(湖州)·무당산 등지에서 전계하니, 제자가 남북에 두루 퍼졌는데 담수성(譚守誠)·첨태림(詹太林) 등이 모두 그의 문하에서 나왔다. 용문파는 이로 말미암아 청대 전진의 주류가 되었고 백운관은 용문의 조정(祖庭)이 되었다. 그는 『용문심법(龍門心法)』(일명 『벽원단경碧苑壇經』)을 지어 지계(持戒)가 수도의 근본임을 강조하고 "계행정엄(戒行精嚴)"을 제창하여 전진 총림 제도를 재건하였다. 강희 19년(1680) 백운관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훗날 "포일고사(抱一高士)"를 추증받았다.

공헌과 영향

  • 백운관에서 공개적으로 삼단대계를 전수하여 전진 총림을 부흥시켰다
  • 용문 율종(律宗)의 계보와 전계(傳戒) 제도를 재건하였다
  • 남쪽으로 내려가 전계함으로써 용문파가 강남 전역에 퍼지게 하였다
  • 『용문심법』을 지어 계율을 수도의 핵심으로 삼았다

저작

전설

그의 젊은 시절 도를 찾아다닌 일, 조복양을 만나 계를 받은 일 및 출생 연도에 관해서는 여러 기록 사이의 차이가 매우 커서 대부분 전설적 색채를 띠고 있다.

참고 문헌
  1. 『용문심법(龍門心法)』
  2. 《金盖心灯》
  3. 卿希泰主编《中国道教史》第四卷
  4. 维基百科"王常月"条目
  5. Monica Esposito, Creative Dao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