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 장수청(張守淸)

장수청(張守淸)Zhang Shouqing

자·도호
명(名) 동연(洞淵), 자(字) 수청(守淸), 호(號) 월협수(月峽叟), 체현묘응태화진인(體玄妙應太和眞人)
시대
원(元)
생몰
1254 — ?(약 14세기 전기)
유파
청미파(淸微派), 무당도(武當道), 전진도(全真道)
역할
도사(道士)무당종사(武當宗師)과의대사(科儀大師)
출신지
협주의도(峽州宜都, 오늘날 후베이湖北 이두宜都)
활동지
무당산(武當山)

생애

장수청(張守清)은 이름이 동연(洞淵), 자가 수청(守清)이며, 후베이(湖北) 시아현(峽州) 이두(宜都) 사람으로 원대 무당도(武當道)의 핵심 인물이다. 초년에 아전이었으나 30여 세에 관직을 버리고 무당산에 들어가 오룡궁(五龍宮) 도사 노대유(魯大宥)를 사사하였으며, 아울러 전진(全真) 단법(丹法), 청미뇌법(清微雷法)과 정일부록(正一符籙)을 전수받아 여러 파를 아우른 무당도법 체계를 형성하였다. 그는 남암(南岩) 천을진경궁(天乙真慶宮)의 건립을 주관하여, 절벽을 뚫어 전각을 지었으며 수십 년에 걸쳐 완성하여 남암을 무당산 궁관군의 중심 중 하나로 만들었다. 또 무당산 궁관의 관리를 정돈하고 밭을 두어 대중을 부양하니 문도(門徒)가 매우 번성하여 '문도 수천 명'이라 일컬어졌다. 원 성종(成宗)·무종(武宗)·인종(仁宗) 여러 조정에서 여러 차례 조서에 응하여 대도(大都)에 이르러 초제(醮祭)를 열어 기우(祈雨)와 기사(祈嗣)를 하였는데 모두 영험이 있어, 잇달아 '체현묘응태화진인(體玄妙應太和真人)' 등의 호를 하사받아, 무당도는 이로써 조정의 정식 승인을 얻어 명 성조(成祖)가 무당산을 크게 중수하는 조직적·신앙적 기초를 마련하였다. 장수청이 전한 것은 진무(真武, 현천상제(玄天上帝)) 신앙을 중심으로 하며 청미뇌법과 내단 수련을 겸행하여, 무당도파를 실질적으로 정형화한 인물로 여겨진다.

공헌과 영향

  • 전진(全真)·청미(清微)·정일(正一) 여러 법을 융합하여 무당도파의 교법 체계를 다짐
  • 남암 천을진경궁을 건립하여 무당 궁관 체계를 확장함
  • 여러 차례 조서를 받들어 대궐로 나아가 초제를 열어 무당도가 원 조정의 승인과 봉작을 얻게 함
  • 진무 신앙을 중심으로 한 무당의 수행과 과의(科儀) 전통을 확립함

저작

  • (관련 기록은) 『무당복지총진집(武當福地總眞集)』(참조)
  • 『대악태화산지(大嶽太和山志)』(수록 비기碑記)

전설

기우, 기설, 기사(祈嗣)의 영험담은 원대 비지(碑志)와 산지(山志)에 실려 있는데, 종교적 서술에 속하나 그 역사적 핵심은 그가 실제로 여러 차례 조서를 받들어 초제를 열었다는 사실이다.

참고 문헌
  1. 刘道明《武当福地总真集》(元)
  2. 《大岳太和山志》所收元代碑记
  3. 卿希泰主编《中国道教史》第三卷
  4. 维基百科“武当派”条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