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 구겸지(寇謙之)

구겸지(寇謙之)Kou Qianzhi

자·도호
보진(輔眞)
시대
북위(北魏)
생몰
365 — 448
유파
천사도(天師道)
역할
북천사도(北天師道)의 개혁자국사(國師)
출신지
상곡 창평(上谷昌平, 오늘날의 베이징 창핑), 풍익(馮翊) 만년현(萬年縣)에 우거(寓居)
활동지
숭산(嵩山), 화산(華山)

생애

구겸지(寇謙之)는 자가 보진(輔真)으로, 북위(北魏)의 도사이며 북천사도(北天師道)의 개혁자이다. 『위서(魏書)·석로지(釋老志)』에 따르면 그는 젊어서부터 선도(仙道)를 좋아하여 장로(張魯)의 술법을 닦았으며, 이후 성공흥(成公興)을 따라 화산(華山)과 숭산(嵩山)에 들어가 7년 동안 수도하였다. 신서(神瑞) 2년(415) 태상노군(太上老君)이 숭산에 강림하여 '천사(天師)의 지위'와 『운중음송신과지계(雲中音誦新科之誡)』 20권을 내려 주며 '도교를 정리하여 삼장(三張, 장릉·장형·장로)의 거짓된 법술과 조미전세(租米錢稅) 및 남녀합기지술(男女合氣之術)을 없애라' 명하였다고 선포하고, 예도(禮度)를 으뜸으로 삼아 복식(服食)과 폐련(閉練)을 더하였다. 태상(泰常) 8년(423)에는 또 노군의 현손(玄孫) 이보문(李譜文)이 『녹도진경(錄圖真經)』 60여 권을 내려 주었다고 칭하였다. 시광(始光) 원년(424) 평성(平城)에 들어가 책을 바쳐 사도(司徒) 최호(崔浩)의 지지를 얻었으며, 태무제(太武帝)는 그를 천사로 받들어 평성에 천사도장(天師道場)을 세웠다. 태평진군(太平真君) 3년(442) 태무제가 친히 도단(道壇)에 이르러 부록(符籙)을 받았으니, 이후 북위 황제가 즉위할 때 부록을 받는 것이 정례(定例)가 되었다. 구겸지의 개혁으로 천사도는 예의·계율·재초(齋醮)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고, 처음으로 국가 종교의 지위를 획득하였다. 그는 또한 태무제의 폐불(廢佛) 사건에도 관여하였다. 태평진군 9년(448) 세상을 떠났다.

공헌과 영향

  • '청정도교(清整道教)'로 천사도를 개혁하여 조미전세와 남녀합기지술을 폐지
  • 새로운 과계(科誡)와 재초 의범을 제정하여 도교 예의화를 추진
  • 도교를 북위의 국교로 만들어 황제 수록 제도를 열음

저작

  • 『운중음송신과지계(雲中音誦新科之誡)』(『노군음송계경(老君音誦誡經)』으로 일부 잔존)
  • 『녹도진경(錄圖眞經)』(일실)

전설

전설: 태상노군이 두 차례 숭산에 강림하여 경전을 내렸다고 하며, 성공흥은 신선이 하계하여 그의 스승이 되었다고 전한다.

참고 문헌
  1. 《魏书·释老志》
  2. 维基百科:寇谦之
  3. 卿希泰主编《中国道教史》第一卷
  4. 汤一介《魏晋南北朝时期的道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