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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평(尹志平)Yin Zhiping

자·도호
자는 대화(大和), 호는 청화자(淸和子), 청화묘도광화진인(淸和妙道廣化眞人)
시대
금~원(金~元)
생몰
1169 — 1251
유파
전진도(全真道), 전진용문파(全眞龍門派)
역할
전진장교(全眞掌教)내단가(內丹家)
출신지
창주(滄州, 일설에는 래주萊州)
활동지
베이징 백운관(北京白雲觀), 융러궁(永樂宮)

생애

윤지평(尹志平)은 전진도(全眞道) 제6대 장교(掌敎)이다. 열네 살에 출가하여 마옥(馬鈺)·유처현(劉處玄)·구처기(丘處機)·학대통(郝大通)·왕처일(王處一) 등 여러 진인(眞人)을 차례로 사사하였으며, 마지막으로는 구처기의 고제(高弟)가 되어 1220년 구처기를 따라 서행하여 칭기즈 칸을 알현하였다. 1227년 구처기가 세상을 떠난 뒤 장교를 계승하여 옌징(燕京) 장춘궁(長春宮)을 주지하며 십여 년간 교무를 처리하니, 이 시기 전진도의 세력이 정점에 이르렀다. 그는 궁관을 크게 확장하여 중양궁(重陽宮)·순양궁(純陽宮, 영락궁永樂宮)을 지었으며, 관중(關中) 여러 도관의 중수를 주관하였다. 1238년 물러나 이지상(李志常)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윤지평의 교풍(敎風)은 엄정하여 「덕으로써 사람을 감복시킨다(以德服人)」를 제창하고 계율을 중시하였으며, 제자들이 교세를 빌려 불사(佛寺)를 침탈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그의 언론은 『청화진인북유어록(淸和眞人北遊語錄)』으로 엮였다. 만년에는 우화산(五華山)에 은거하였고 1251년 장춘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공헌과 영향

  • 구처기의 뒤를 이어 장교를 맡아 원초(元初) 전진도의 지위를 공고히 하였다
  • 중양궁(重陽宮)·영락궁(永樂宮) 등 대형 궁관을 조영하였다
  • 계율과 겸양을 강조하였으며 그의 어록은 전진 심성수양의 중요한 문헌이다

저작

  • 보광집(葆光集)
  • 청화진인북유어록(淸和眞人北遊語錄, 제자 편집)
참고 문헌
  1. 《清和真人北游语录》(道藏)
  2. 《甘水仙源录》
  3. 卿希泰主编《中国道教史》第三卷
  4. 维基百科"尹志平"条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