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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張魯)Zhang Lu

자·도호
공기(公祺), 계사(系師), 계천사(系天師), 한녕태수(漢寧太守), 낭중후(閬中侯)
시대
동한(東漢)
생몰
? — 216
유파
천사도(天師道)
역할
제3대 천사(天師)정교합일 정권의 지도자
출신지
패국(沛國) 풍현(豐縣)
활동지
학명산(鶴鳴山)

생애

장로(張魯)는 자가 공기(公祺)이며, 장릉(張陵)의 손자이자 장형(張衡)의 아들로 오두미도(五斗米道)의 제3대 영수이다. 도교에서는 그를 "계사(系師)"라 부른다. 초평(初平) 2년(191) 익주목(益州牧) 유언(劉焉)의 파견을 받아 장수(張修)와 함께 한중(漢中)을 공격하였고, 이후 장수와 그 무리를 죽이고 한중을 거의 30년간 차지하며 정교합일(政敎合一)의 정권을 세웠다. 그는 스스로 "사군(師君)"이라 칭하였으며, 처음 입교한 신도는 "귀졸(鬼卒)"이라 하고, 도를 받아 이미 믿는 자는 "제주(祭酒)"라 하여 제주가 부중(部衆)을 통솔하게 하였다. 또한 "의사(義舍)"를 설치하여 의미(義米)와 고기를 두고 행인들이 가져다 쓰게 하였으며, 법을 어긴 자는 세 번 용서한 뒤에야 형을 집행하였고, 병자에게는 잘못을 반성하게 하고 "삼관수서(三官手書)"를 행하게 하니 "백성과 이민족이 모두 이를 즐거워하였다"고 한다. 건안(建安) 20년(215) 조조(曹操)가 한중을 정벌하자 장로는 부고(府庫)를 봉하여 두고 항복하였고, 진남장군(鎭南將軍)에 제수되고 낭중후(閬中侯)에 봉해졌다. 그의 가족과 부중은 업성(鄴城) 등지로 북천(北遷)하였으며, 이로써 오두미도가 중원과 북방으로 전파되어 후일 천사도(天師道)가 전국에 퍼지는 전환점이 되었다. 건안 21년(216) 세상을 떠났다. 『노자상이주(老子想爾注)』는 일설에 그의 저작이라 한다.

공헌과 영향

  • 한중에서 정교합일 정권을 거의 30년간 세움
  • 제주 제도, 의사, 삼관수서 등 교단 조직과 제도를 정비함
  • 조조에게 항복한 뒤 교단이 북천하여 천사도가 전국으로 전파됨
  • 『노자상이주』는 그의 손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있음

저작

  • 『노자상이주(老子想爾注)』(일설)
참고 문헌
  1. 《三国志·魏书·张鲁传》
  2. 《后汉书·刘焉传》
  3. 维基百科:张鲁
  4. 卿希泰主编《中国道教史》第一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