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균(吳筠)Wu Yun
- 자·도호
- 정절(貞節), 종현선생(宗玄先生), 종원선생(宗元先生)
- 시대
- 당(唐)
- 생몰
- ? — 778
- 유파
- 상청파(上淸派)
- 역할
- 도교 이론가시인(詩人)
- 출신지
- 화주(華州) 화음(華陰, 지금의 섬서陝西 화음)
- 활동지
- 숭산(嵩山), 천태산(天台山), 모산(茅山, 구곡산句曲山)
생애
오균(吳筠)은 자가 정절(貞節)이며 당대의 도사이자 문학가이다. 어려서 경사(經史)에 통달하고 문장에 뛰어났으나 진사시에 낙방하여 마침내 숭산(嵩山)에 들어가 반사정(潘師正)의 제자 풍제정(馮齊整)에게서 정일(正一)의 법을 전수받았고, 이후 남쪽으로 천태(天台)를 유람하며 이백(李白)·공소보(孔巢父) 등과 섬중(剡中)에 은거하여 "죽계육일(竹溪六逸)"의 벗이 되었다. 천보(天寶) 초 현종이 불러 만나보고 도법을 물으니 "도에 깊이 통달한 자는 『노자』 오천 문(五千文)만 한 것이 없으며 나머지는 한갓 지필(紙筆)을 허비할 뿐입니다"라고 답하였고, 신선 수련의 일을 물으니 "이는 야인(野人)의 일로서 마땅히 세월과 공행(功行)으로 구해야 할 것이며 임금이 마음 둘 바가 아닙니다"라고 답하여 현종의 신임을 얻어 한림(翰林)에서 대조(待詔)하였다. 고력사(高力士) 등의 참소와 비방으로 인해 숭산·모산으로 돌아갈 것을 청하였다. 대력(大曆) 13년(778) 선성(宣城)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제자들이 사사로이 "종현선생(宗玄先生)"이라는 시호를 올렸다. 『현강론(玄綱論)』『신선가학론(神仙可學論)』『형신가고론(形神可固論)』『심목론(心目論)』 등을 저술하여 신선은 배울 수 있고 형신(形神)은 굳건히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수정거욕(守靜去欲)"·"보정애기(寶精愛氣)"를 강조하였으니, 당대 도교 수련 이론의 중요한 저작이다. 시문에도 뛰어나 『전당시(全唐詩)』에 시 한 권이 전한다.
공헌과 영향
- 『현강론』『신선가학론』을 저술하여 신선가학·성명수련의 이치를 체계적으로 논증함
- 문학과 도교를 결합시켜 당대 도교 문인의 대표가 됨
저작
- 『현강론(玄綱論)』
- 『신선가학론(神仙可學論)』
- 『형신가고론(形神可固論)』
- 『심목론(心目論)』
- 『종현선생문집(宗玄先生文集)』
참고 문헌
- 《旧唐书·隐逸传·吴筠》
- 权德舆《宗玄先生文集序》
- 维基百科:吴筠
- 卿希泰主编《中国道教史》第二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