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黃帝)Huangdi (Yellow Emperor)
- 자·도호
- 헌원씨(軒轅氏), 유웅씨(有熊氏), 헌원황제(軒轅黃帝), 중앙황제(中央黃帝)
- 시대
- 전설시대(傳說時代)
- 생몰
- ?(전설상의 인물) — ?(전설상의 인물)
- 유파
- 황로도(黃老道), 방선도(方仙道)
- 역할
- 숭도제왕(崇道帝王)전설상의 시조(傳說始祖)도교존신(道敎尊神)
- 출신지
- (전) 유웅(有熊, 지금의 허난 신정新鄭 일대)
- 활동지
- 공동산(崆峒山)
생애
황제(黃帝)는 중국 상고 전설상의 부족 수령이자 인문 시조(人文始祖)이며, 고증할 수 있는 역사적 개인이 아니다. 그 명호는 가장 이르게는 전국(戰國) 문헌에 집중적으로 보이며, 『사기(史記)』는 「오제본기(五帝本紀)」를 첫머리에 두었으나 사마천(司馬遷)조차 이미 '그 문장이 우아하고 순정(醇正)하지 않다'고 하였으니, 학계는 전국시대 이후에 층층이 쌓여 구성된 전설 인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도교사에서 황제의 지위는 지극히 특수하다. 전국에서 한초에 걸친 황로지학(黃老之學)은 황제와 노자를 병칭하였으며, 황제의 이름에 가탁하여 저술한 자가 매우 많았으니(마왕두이(馬王堆) 백서(帛書) 『황제사경(黃帝四經)』이 그 대표), '황로(黃老)'가 한초 정치와 양생 사상의 기치가 되게 하였다. 진한(秦漢)의 방선도(方仙道)는 또 황제를 가장 먼저 신선이 된 제왕의 전범으로 삼았는데, 『사기·봉선서(封禪書)』에는 방사 공손경(公孫卿)이 '황제가 형산(荊山)에서 솥을 주조하고 용을 타고 승천하였다'는 설로 한 무제(武帝)를 유세하여, 무제의 구선(求仙) 활동을 직접적으로 추동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대량의 도서(道書)가 황제의 이름을 가탁하니, 『황제내경(黃帝內經)』 『황제음부경(黃帝陰符經)』 『황제구정신단경결(黃帝九鼎神丹經訣)』 『황제소문(黃帝素問)』 『황제용수경(黃帝龍首經)』 등이 있어 의도(醫道), 단법(丹法), 병형(兵形), 술수(術數) 각 분야를 아우른다. 도교는 그를 '중앙황제(中央黃帝)' '헌원황제(軒轅黃帝)'로 존숭하며, 당대(唐代) 이후로는 산시(陝西) 황릉(黃陵) 교산(橋山) 황제릉(黃帝陵) 제사가 국가 전례(典禮)가 되어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공헌과 영향
- 노자와 병칭되어 '황로(黃老)'지학의 명의상 핵심을 이룸
- 가장 먼저 승천하여 신선이 된 제왕의 전범으로서 방선도와 외단(外丹)에 신화적 원형을 제공함
- 대량의 도교 의약, 단술, 술수 전적이 그 이름에 가탁되어 '황제서(黃帝書)' 체계를 이룸
- 도교의 신보(神譜)에 편입되어 그 능묘 제사가 오늘날까지 이어짐
저작
- (가탁) 『황제음부경(黃帝陰符經)』
- (가탁) 『황제내경(黃帝內經)』
- (가탁) 『황제구정신단경결(黃帝九鼎神丹經訣)』
- (가탁) 『황제사경(黃帝四經)』(마왕퇴백서馬王堆帛書)
전설
형산에서 솥을 주조하니 솥이 완성되자 용이 수염을 늘어뜨려 황제를 맞이하여 하늘로 올라갔고, 뭇 신하가 용의 수염을 붙잡다가 떨어졌다는 것(『사기·봉선서』에 인용된 방사 공손경의 말); 공동산(崆峒山)에서 광성자(廣成子)에게 도를 물었다는 것(『장자(莊子)·재유(在宥)』); 구천현녀(九天玄女)에게서 『음부경(陰符經)』을 받아 치우(蚩尤)를 이겼다는 것 등은 모두 신화와 종교 전설이며 사실이 아니다.
- 《史记·五帝本纪》《史记·封禅书》
- 《庄子·在宥》
- 马王堆汉墓帛书《黄帝四经》
- 维基百科“黄帝”条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