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郭象)Guo Xiang
- 자·도호
- 자(字) 자현(子玄)
- 시대
- 서진(西晉)
- 생몰
- 약 252년 — 312
- 유파
- 노장학파(老莊學派, 선진 도가), 중현파(重玄派)
- 역할
- 현학가(玄學家)경주가(經注家)도가 학자
- 출신지
- 하남(河南, 오늘날 허난河南 뤄양洛陽 일대)
생애
곽상(郭象)은 자(字)가 자현(子玄)으로, 서진(西晉) 하남(河南) 사람이며 벼슬은 황문시랑(黃門侍郎)·태부주부(太傅主簿)에 이르렀고, 현학(玄學) 중기의 대표 인물이다. 그가 지은 『장자주(莊子注)』 33권은 오늘날 전해지는 『장자(莊子)』의 정본(定本)이다. 곽상은 향수(向秀)의 옛 주석을 바탕으로 내편·외편·잡편을 산정(刪定)하여, 한대에 전해지던 52편본을 33편으로 줄였는데, 이후 『장자』는 곧 곽상본으로 세상에 유행하고 다른 고본들은 모두 사라졌다. 『세설신어(世說新語)』에는 '곽상이 향수의 주석을 훔쳤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어 학계에서는 지금까지도 두 사람의 관계를 두고 논쟁하는데, 통행되는 견해는 곽상이 서술하면서도 자신의 저작을 더하여 향수의 주석과는 별도로 스스로 하나의 체계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의 사상은 '독화(獨化)'와 '자생(自生)'을 핵심으로 삼는다. 만물은 각기 현명(玄冥)의 경지에서 홀로 화(化)하며 조물주도 없고 다른 것에 의지함도 없으니, '성분(性分)'이 스스로 만족함이 곧 소요(逍遙)라는 것이다. 이로부터 '명교(名敎)가 곧 자연(自然)'이라는 명제를 이끌어 내어, 사인(士人)이 벼슬에 나아가는 것과 내면의 초월을 조화시키는 방안을 제공하였다. 곽상은 도사가 아니었으나 『장자주』는 도교에 전면적으로 수용되었다. 당대(唐代)에 『장자』는 『남화진경(南華眞經)』으로 격상되었으며, 관에서 정한 주소본(注疏本)은 곧 곽상의 주와 성현영(成玄英)의 소(疏)를 사용하였고, 중현학과 내단(內丹) 심성론(心性論)도 그의 '자연'과 '무대(無待)'설을 많이 취하였다.
공헌과 영향
- 『장자』를 산정하여 33편으로 만들어 전해지는 정본을 이룸
- 『장자주』를 지어 '독화'·'자생'·'성분'설을 창시함
- '명교가 곧 자연'이라는 명제를 제시하여 현학의 조화적 방향을 완성함
- 당대 『남화진경』의 관정(官定) 주소가 그의 주를 근본으로 삼아 도교 의리에 영향을 끼침
저작
- 『장자주(莊子注)』(『남화진경주南華眞經注』)
- 『논어체략(論語體略)』(일실佚失)
- 『노자주(老子注)』(망실)
- 《晋书·郭象传》
- 《世说新语·文学》
- 汤一介《郭象与魏晋玄学》
- 维基百科“郭象”条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