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 왕필(王弼)

왕필(王弼)Wang Bi

자·도호
자(字) 보사(輔嗣)
시대
삼국(三國)(위魏)
생몰
226 — 249
유파
노장학파(老莊學派, 선진 도가), 중현파(重玄派)
역할
현학가(玄學家)경주가(經注家)도가 학자
출신지
산양고평(山陽高平, 오늘날 산둥山東 웨이산微山 일대)

생애

왕필(王弼)은 자(字)가 보사(輔嗣)로, 삼국(三國) 위(魏)의 산양(山陽) 고평(高平) 사람이며, 정시현학(正始玄學)의 대표 인물로 나이 스물넷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지은 『노자주(老子注)』 『노자지략(老子指略)』 『주역주(周易注)』 『주역약례(周易略例)』는 '무를 근본으로 삼는다(以無爲本)'와 '뜻을 얻으면 말을 잊는다(得意忘言)'를 강령으로 삼아, 『노자』를 한대(漢代) 황로(黃老) 정술(政術)과 양생 방술의 맥락에서 떼어내어 하나의 본체론 철학으로 재구성하였다. 만물은 '무(無)'를 근본으로 삼고, '유(有)'는 '무'에서 생겨나며, 성인은 무를 체득하여 사물에 응하므로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숭본식말(崇本息末)'과 '집일통중(執一統衆)'을 제시하여 『노자』 『주역』 『논어』를 관통시켜 위진현학(魏晉玄學)의 기풍을 열었다. 왕필의 『노자주』는 당대(唐代) 이후 전해지는 『도덕경』 가운데 가장 널리 통행되는 주석본이자 백문(白文) 저본 중 하나가 되었으며, 그 장 구분과 문구는 후세 사람들이 읽는 『노자』의 면모를 직접적으로 결정하였다. 도교 내부에서는 하상공(河上公) 주(注)를 수양의 정통으로 삼았지만, 중현학파(重玄學派)의 성현영(成玄英)·이영(李榮) 등도 왕필의 본체론과 언어관을 대량으로 흡수하였다. 왕필 본인은 도교에 속하지 않으며 현학가(玄學家)일 뿐 도사는 아니었으나, 그가 도가 경전을 철학화하여 해석한 것은 도교 의리(義理)의 사변적 층위를 깊이 형성하였다.

공헌과 영향

  • 『노자주』 『노자지략』을 지어 '무를 근본으로 삼는다'는 본체론적 해석을 확립함
  • 그 주석본이 전해지는 『도덕경』 가운데 가장 널리 통행되는 저본 중 하나가 됨
  • '뜻을 얻으면 말을 잊는다'를 제시하여 중현학과 후세 도교 의학(義學)의 방법론에 영향을 끼침
  • 현학으로 유가와 도가를 통합하여 정시(正始)의 기풍을 엶

저작

  • 『노자주(老子注)』(『노자도덕경주老子道德經注』)
  • 『노자지략(老子指略)』
  • 『주역주(周易注)』
  • 『주역략례(周易略例)』
  • 『논어석의(論語釋疑)』(잔본殘本)
참고 문헌
  1. 《三国志·魏书·钟会传》裴松之注引何劭《王弼传》
  2. 楼宇烈《王弼集校释》
  3. Rudolf Wagner, A Chinese Reading of the Daodejing
  4. 维基百科“王弼”条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