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 이함광(李含光)

이함광(李含光)Li Hanguang

자·도호
홍함광(弘含光), 현정선생(玄靜先生)
시대
당(唐)
생몰
683 — 769
유파
상청파(上淸派)
역할
상청파 종사(宗師)
출신지
광릉(廣陵) 강도(江都, 지금의 강소江蘇 양주揚州)
활동지
모산(茅山, 구곡산句曲山), 왕우산(王屋山)

생애

이함광(李含光)은 본래 성이 홍(弘)이었으나 효경황제(孝敬皇帝) 이홍(李弘)의 휘(諱)를 피하여 이(李)로 성을 바꾸었으며, 당대 모산(茅山) 상청파 제13대 종사이다. 신룡(神龍) 초(705) 도사가 되었고, 개원(開元) 17년(729) 왕옥산(王屋山)에 이르러 사마승정에게서 상청 경법을 전수받았는데, 사마승정은 그를 "진옥청지객(真玉清之客)"이라 칭하였으며 사마승정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현종의 명을 받들어 양대관(陽臺觀)에 거주하였다. 천보(天寶) 4년(745) 현종이 경사로 불러들여 전록(傳籙)의 스승으로 삼고자 하였고, 칙명으로 모산 자양관(紫陽觀)을 수리하여 그곳에 거주하게 하였으며 "현정선생(玄静先生)"이라는 호를 하사하였다. 현종은 일찍이 왕민(王旻) 등을 모산에 보내어 그에게 상청 경문의 결락된 부분을 보충해 쓰도록 청한 바 있다. 그는 모산에서 종단(宗壇)을 재건하고 널리 제자를 제도하였는데 문하에 위경소(韋景昭)·맹담연(孟湛然)·은숙(殷淑) 등이 있었으며, 안진경(顏真卿)이 그를 위해 『모산현정선생광릉이군비명(茅山玄静先生廣陵李君碑銘)』을 지었다. 대력(大曆) 4년(769) 세상을 떠나니 향년 87세였다. 『주역의략(周易義略)』『노장학기(老莊學記)』『삼현이동론(三玄異同論)』『본초음의(本草音義)』 등을 저술하였으나 대부분 산일되었다.

공헌과 영향

  • 사마승정의 법을 이어받아 모산 종단을 재건함
  • 현종의 예우를 받아 전록사가 되었으며 당대 모산종 전성기의 종사가 됨

저작

  • 『주역의략(周易義略)』(일실)
  • 『노장학기(老莊學記)』(일실)
  • 『삼현이동론(三玄異同論)』(일실)
  • 『본초음의(本草音義)』(일실)
참고 문헌
  1. 颜真卿《茅山玄静先生广陵李君碑铭》
  2. 《茅山志》
  3. 维基百科:李含光
  4. 卿希泰主编《中国道教史》第二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