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 이백(李白)(부)

이백(李白)(부)Li Bai

자·도호
태백(太白), 청련거사(靑蓮居士), 적선인(謫仙人)
시대
당(唐)
생몰
701 — 762
역할
시인(詩人)수록도사(受籙道士)
출신지
면주(綿州) 창륭(昌隆, 지금의 사천四川 강유江油), 일설에는 쇄엽(碎葉)
활동지
천태산(天台山), 숭산(嵩山)

생애

이백(李白)은 자가 태백(太白)이고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며, 성당(盛唐)의 시인으로 도교와의 관계가 매우 깊었다. 소년 시절 촉(蜀) 지방에서 「다섯 살에 육갑(六甲)을 외우고 열 살에 백가(百家)의 글을 읽었다」고 하며, 도사 동암자(東巖子)와 함께 민산(岷山)에 은거하였다. 스무 살 전후에는 강릉(江陵)에서 사마승정(司馬承禎)을 만났는데, 승정이 그를 「선풍도골(仙風道骨)이 있어 천지 팔방 밖에서 신유(神遊)할 만하다」고 평하니, 이백이 이에 「대붕우희유조부(大鵬遇希有鳥賦)」를 지었다. 그는 원단구(元丹丘)·오균(吳筠)·하지장(賀知章) 등과 교유하였으며, 오균과 옥진공주(玉眞公主)의 추천이 천보(天寶) 원년(742) 한림대조(翰林待詔)로 들어간 원인 중 하나였다. 천보 3재(744) 장안을 떠난 뒤 제주(齊州, 지금의 지난濟南) 자극궁(紫極宮)에 이르러 고천사(高天師) 여귀(如貴)에게서 도록(道籙)을 받아 정식으로 도사가 되었는데, 그의 시 「방도안릉우개환위여조진록임별류증(訪道安陵遇蓋寰爲余造眞籙臨別留贈)」 등이 이 일을 기록하고 있다. 이백의 시에 나타나는 수많은 신선·연단(煉丹)·유선(遊仙) 심상은 그의 도교 신앙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이 항목은 부록 인물이다.

공헌과 영향

  • 도록(道籙)을 받아 도사가 된 성당(盛唐) 시인의 대표적 인물
  • 유선시(遊仙詩)로써 도교 신선 심상을 당시(唐詩)의 정점으로 끌어올림

저작

  • 『이태백집(李太白集)』

전설

전설: 이백은 태백금성(太白金星)이 인간 세상에 하강한 것이라 하며, 취한 채로 물에 들어가 달을 잡으려다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참고 문헌
  1. 《旧唐书·文苑传·李白》
  2. 《新唐书·文艺传》
  3. 李白《访道安陵遇盖寰为余造真箓临别留赠》
  4. 维基百科:李白
  5. 卿希泰主编《中国道教史》第二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