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타이 도덕경당(邢台道德經幢)Daodejing Stele-Pillar, Xingtai
- 유형
- 비각(碑刻)
- 소재지
- 중국 · 하북(河北) · 싱타이시 샹두구(邢台市襄都區) · 청풍원(清風園, 청풍루 뒤뜰). 원래는 형주 용흥관에 세워졌으나 지금은 원래 자리가 아니다
- 좌표
- 37.0661, 114.5014 지도 ↗
- 창건
- 당 개원 27년 8월 5일(739) · 형주자사 이질이 건립하였다. 북송 단공 원년(988) 보수 시 제기는 하찬이 짓고 노화와 이사순이 글씨를 썼다. '전액이 저수량의 것'이라는 설은 성립하지 않는다(저수량은 659년에 세상을 떠났다)
- 문화재 등급
- 제7차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2013)
개요
형태(邢台) 도덕경당은 원래 형주(邢州) 용흥관에 세워졌으며, 당 개원 27년 8월 5일(739) 형주자사(邢州刺史) 이질(李質)이 건립하였다. 이현 도덕경당과 마찬가지로 현종이 각 주에 『도덕경』을 새겨 세우라고 조령을 내린 정책 계열에 속한다. 당은 전체 높이 6.89미터이며 당신은 팔각기둥으로, 일곱 면에 경문을 새기고 한 면에는 역대 제기(題記)를 새겼으며, 아래는 앙련(仰蓮) 당좌(幢座)로 받쳤다. 북송 단공(端拱) 원년(988) 보수되었으며, 제기는 하찬(何纘)이 짓고 노화(盧華)와 이사순(李思順)이 글씨를 썼다. 세간에는 전액(篆額)이 저수량(褚遂良)의 손에서 나왔다는 설이 전하나, 저수량은 659년에 세상을 떠나 이 당을 세우기보다 80년이나 앞서므로 이 설은 성립할 수 없다. 명청(明清) 시기 용흥관이 폐허가 된 뒤 경당은 한때 비구니 암자의 뒤뜰에 놓여 있었으며, 청말(清末) 무전손(繆荃孫)이 다시 발견하여 저록(著錄)하였다. 문화대혁명 중 경당은 폭약으로 파괴되어 위아래 두 토막만 남았는데, 1990년 중간 부분을 보각(補刻)하여 다시 세우고 청풍루(清風樓) 뒤뜰로 옮겼다. 따라서 오늘날의 경당은 원래 부분과 후대 보각 부분이 합쳐진 복합체이므로, 이를 활용할 때는 그 재질 구성에 유의해야 한다. 2013년 3월 5일 제7차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등록번호 7-1502-4-005, 병합 항목)로 지정되었다.
볼거리
- 당 개원 27년(739) 건립
- 전체 높이 6.89미터, 일곱 면에 경문을 새김
- 북송 단공 원년 보수 시 제기 새김
- 문화대혁명 때 파괴된 뒤 1990년 중간 부분을 보각함
관련 인물
당(唐) 현종(玄宗)관련 경전
『도덕경(道德經)』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