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고조(唐高祖)Emperor Gaozu of Tang
- 자·도호
- 이연(李淵), 당 신요황제(唐神堯皇帝)
- 시대
- 당(唐)
- 생몰
- 566 — 635
- 유파
- 누관도(樓觀道)
- 역할
- 숭도제왕(崇道帝王)
- 출신지
- 장안(長安)
- 활동지
- 러우관타이(樓觀台)
생애
당 고조(唐高祖) 이연(李淵)은 당나라 한 시대의 「도교를 앞세우고 불교를 뒤로 하는(道先佛後)」 국책을 확립하였으니, 이는 도교가 중국에서 가장 높은 정치적 지위를 얻게 되는 출발점이다. 이당(李唐)이 군사를 일으킬 즈음 누관(樓觀)의 도사 기휘(岐暉, 일명 평정平定) 등이 군량으로 도우며 「천도(天道)가 장차 바뀔 것」이라 선언하여 그 기세를 만들어 주었다. 무덕(武德) 3년(620) 진주(晉州) 사람 길선행(吉善行)이 양각산(羊角山, 지금의 산서山西 부산浮山)에서 흰옷 입은 노인을 보았는데 스스로 「나는 그대의 조상이다. 나를 위하여 당나라 천자에게 말하라. 내 자손이 천 년 동안 천하를 태평하게 하리라」고 하였다고 아뢰니, 고조는 마침내 노자 이이(李耳)를 이당의 선조로 선포하고 그곳에 경당관(慶唐觀, 일명 흥당관興唐觀)을 세우고 노자를 추존(追尊)하였다. 무덕 8년(625) 고조가 친히 국자학(國子學)에 나아가 석전(釋奠)을 행하고 삼교의 차서를 「노자가 먼저, 공자가 다음, 부처가 끝」으로 명확히 정하여 불교를 맨 끝에 두었으니, 이 제도는 당대에 여러 차례 뒤집히기도 하였으나 「도선(道先)」의 원칙은 대체로 여러 황제가 지켰다. 그는 또 종남산(終南山) 누관을 확장하여(종성관宗聖觀으로 이름을 고침) 밭과 편액을 내려 누관도(樓觀道)가 당초(唐初) 가장 존숭받는 도파가 되게 하였다. 이당이 노자를 시조로 받든 방식은 도교로 하여금 황실 종묘와 같은 정당성을 얻게 하였고, 이는 곧바로 고종(高宗) 상원(上元) 원년(674) 노자를 「태상현원황제(太上玄元皇帝)」로 높이고 현종(玄宗)이 숭현학(崇玄學)과 도거(道擧)를 설치하는 등 일련의 국교화 조치로 이어졌다.
공헌과 영향
- 노자 이이를 이당의 선조로 받들어 당대 도교 국교화의 기초를 놓음
- 무덕 8년에 삼교의 차서를 도교가 먼저, 유교가 다음, 불교가 끝으로 정함
- 종남산 누관을 확장하고 종성관으로 이름을 고쳐 누관도를 부식(扶植)함
- 양각산에 경당관을 세워 노군이 현신하였다는 국가적 서사를 형성함
전설
양각산에서 노군이 현신하여 「내 자손이 천 년 동안 천하를 태평하게 하리라」고 알렸다는 것과 누관도의 도사가 당나라의 흥기를 예언하였다는 것 등은 당초에 왕조의 정당성을 구축하기 위한 종교적 서사에 속한다.
- 《旧唐书·高祖本纪》
- 《混元圣纪》《唐会要》卷五十
- 《终南山说经台历代真仙碑记》
- 维基百科“李渊”条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