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처단(譚處端)Tan Chuduan
- 자·도호
- 본명은 옥(玉), 자는 백옥(伯玉), 처단(處端)으로 개명, 자는 통정(通正), 호는 장진자(長眞子), 장진운수온덕진인(長眞雲水蘊德眞人)
- 시대
- 금(金)
- 생몰
- 1123 — 1185
- 유파
- 전진도(全真道), 전진남무파(全眞南無派)
- 역할
- 전진칠자(全眞七子)남무파(南無派) 조사
- 출신지
- 닝하이(寧海, 지금의 산둥 무핑牟平)
- 활동지
- 곤유산(崑嵛山)
생애
담처단(譚處端)은 산둥(山東) 닝하이(寧海) 사람으로 전진칠자(全眞七子)의 한 사람이다. 본래 유생(儒生)이었는데 풍비(風痹)를 앓다가 1167년 왕중양(王重陽)이 닝하이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치료를 청하였는데, 전하는 바에 따르면 왕중양이 세숫물을 마시게 하여 병이 나았고, 이에 사사하여 출가하였다고 한다. 스승을 따라 변량(汴梁)에 이르렀으며, 왕중양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마옥(馬鈺)·구처기(丘處機)·유처현(劉處玄)과 함께 삼 년간 여묘(廬墓)를 지킨 뒤 각자 흩어져 수도하였다. 담처단은 뤄양(洛陽)에 머물며 포교하였는데, 인욕함구(忍辱含垢)와 화속도인(化俗度人)을 힘써 실천하고 「망정거욕(忘情去欲), 수연도일(隨緣度日)」을 제창하였으며, 1185년 뤄양 조원궁(朝元宮)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전한 일계는 후에 「남무파(南無派)」로 불렸다. 『수운집(水雲集)』을 저술하였는데 대부분 세상을 권계하는 시사(詩詞)이다. 원(元) 지원(至元) 6년 「장진운수온덕진인(長眞雲水蘊德眞人)」으로 추봉되었다.
공헌과 영향
- 전진칠자의 한 사람으로 남무파(南無派)를 창립하였다
- 인욕과 고행, 시사(詩詞)로써 뤄양 일대에서 화속(化俗) 포교를 행하였다
- 『수운집(水雲集)』을 저술하여 전진 초기의 권세시(勸世詩)를 보존하였다
저작
- 수운집(水雲集)
전설
「세숫물을 마셔 풍비가 나았다」는 이야기가 전진 전기(傳記)에 보이는데, 이는 전설이다.
참고 문헌
- 《金莲正宗记》(道藏)
- 卿希泰主编《中国道教史》第三卷
- 维基百科"谭处端"条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