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 기휘(岐暉)

기휘(岐暉)Qi Hui

자·도호
기평정(岐平定), 평정(平定)
시대
수당(隋唐)
생몰
558 — 630
유파
누관도(樓觀道)
역할
누관도(樓觀道) 종사
출신지
경조(京兆, 오늘날의 산시)
활동지
러우관타이(樓觀台)

생애

기휘(岐暉)는 일명(一名) 평정(平定)으로, 수당(隋唐) 교체기 누관도(樓觀道)의 영수(領袖)이다. 수(隋) 대업(大業) 말년 이연(李淵)이 군사를 일으켜 수나라에 반기를 들자, 기휘는 '천도(天道)가 장차 바뀔 것'이라 예언하며 누관도의 양식과 재물을 아낌없이 내어 당군(唐軍)을 도왔고, 도사들을 이끌고 포진관(蒲津關)에서 이연의 군대를 맞이하였다. 당이 건국된 뒤 무덕(武德) 3년(620) 고조(高祖)가 친히 누관에 이르러 칙명으로 누관을 '종성관(宗聖觀)'으로 고치고 전지(田地) 천 경(頃)을 하사하였으니, 기휘는 당초(唐初) 조정으로부터 가장 예우를 받은 도사 중 한 사람이 되었으며 이당(李唐) 왕조가 노자 및 누관도와 인연을 맺게 된 관건적 인물이기도 하다. 정관(貞觀) 4년(630) 세상을 떠났다. 누관도는 이로써 전성기에 접어들어 당초 북방 도교의 중심이 되었다. 『혼원성기(混元聖紀)』, 『역대진선비기(歷代眞仙碑記)』 등의 책은 모두 이 일을 노자가 은밀히 이당 왕조를 보우(保佑)하였다는 증거로 삼으며, 기휘 역시 이 때문에 누관도 역사상 가장 정치적 영향력이 큰 인물이 되었다.

공헌과 영향

  • 이연의 거병(擧兵)을 지원하고 맞이하여 당 왕조가 누관도와 노자를 존숭하게 만듦
  • 누관을 종성관(宗聖觀)으로 바꾸게 하여 당대의 전성기로 이끎

전설

전설: 기휘가 천명(天命)을 미리 알 수 있었다고 하며, 당 고조가 누관에 이르렀을 때 상서로운 조짐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참고 문헌
  1. 《终南山说经台历代真仙碑记》
  2. 《混元圣纪》
  3. 百度百科:楼观道
  4. 卿希泰主编《中国道教史》第二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