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환제(漢桓帝)Emperor Huan of Han
- 자·도호
- 유지(劉志)
- 시대
- 동한(東漢)
- 생몰
- 132 — 168
- 유파
- 황로도(黃老道)
- 역할
- 숭도제왕(崇道帝王)
- 출신지
- 여오(蠡吾, 지금의 허베이)
생애
한 환제(桓帝) 유지(劉志) 재위 기간(146~168)의 노자 제사 활동은 노자가 철인(哲人)에서 종교적 존신(尊神)으로 전환하는 핵심적 표지이다. 『후한서(後漢書)·환제기(桓帝紀)』 『제사지(祭祀志)』에는 연희(延熹) 8년(165)정월 환제가 중상시(中常侍) 좌관(左悺)을 쿠현(苦縣, 오늘날 허난 루이(鹿邑))으로 보내 노자에게 제사 지내게 하였고, 같은 해 11월 또 중상시 관패(管霸)를 쿠현에 보내 제사를 이르게 하였으며, 연희 9년(166)7월 환제가 친히 탁룡궁(濯龍宮)에서 화개(華蓋)의 자리를 마련하고 교천악(郊天樂)으로 황제(黃帝)와 노자를 제사 지냈다(동시에 부도(浮屠, 불타)도 함께 제사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제사는 제왕의 규격으로 노자를 받든 것으로, 관방이 정식으로 노자의 신격을 승인하였음을 표지한다. 같은 해 변소(邊韶)가 칙명을 받들어 『노자명(老子銘)』을 지었는데(비석은 오늘날 탁본이 전한다), 글에서 노자를 '도가 이루어져 몸이 화하고 매미가 허물을 벗듯 세상을 건넜다(道成身化, 蟬蛻渡世)' '단려(丹廬)를 출입하고 황정(黃庭)을 오르내렸다(出入丹廬, 上下黃庭)'고 일컬으니, 이미 완전히 신선화·내수화(內修化)된 표현으로, 현존하는 가장 이른 종교적 어휘로 노자를 묘사한 관방 문헌 중 하나이다. 환제 시기는 마침 태평도(太平道), 오두미도(五斗米道)가 무르익던 때로, 양해(襄楷)가 환제에게 『태평청령서(太平清領書)』(『태평경(太平經)』의 전신)를 바친 것도 연희 9년의 일이니, 관방의 황로 숭배와 민간 도교 운동이 이때 교차하여, 동한 도교 성립의 직접적 배경을 이룬다.
공헌과 영향
- 연희 8년, 9년 두 차례 사자를 보내 쿠현에서 노자에게 제사 지내게 하여, 제왕이 노자를 제사 지내는 제도를 열었음
- 연희 9년 탁룡궁에서 친히 황로(黃老)에게 제사 지내고 교천악을 사용하여 정식으로 노자에게 신격을 부여함
- 그때 변소의 『노자명(老子銘)』이 신선의 어휘로 노자를 묘사하여, 노자 신화화의 핵심 문헌이 됨
- 그의 조정에서 양해가 『태평청령서』를 바쳐, 관방의 황로 신앙과 민간 도교 운동이 교차함
- 《后汉书·孝桓帝纪》
- 《后汉书·祭祀志》及《襄楷传》
- 边韶《老子铭》(延熹八年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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