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장생(范長生)Fan Changsheng
- 자·도호
- 범연구(范延久), 범구중(范九重), 범현(范賢), 장생(長生)
- 시대
- 서진·성한(成漢)
- 생몰
- ? — 318
- 유파
- 천사도(天師道)
- 역할
- 천사도 수령성한 승상(丞相)
- 출신지
- 부릉 단흥(涪陵丹興, 지금의 충칭시 첸장구黔江區)
- 활동지
- 청성산(靑城山)
생애
범장생(范長生)은 일명(一名) 연구(延久), 또 다른 이름은 구중(九重)이며 자(字)는 원(元)으로, 서진(西晉) 말 성한(成漢) 시기 천사도(天師道)의 수령이자 부릉(涪陵) 단흥(丹興) 사람이다. 세간에 전하기로 그는 박학다재(博學多才)하여 청성산(靑城山)에 거하며 그곳의 천사도 신도 천여 가호(家戶)의 우두머리였으니, "본디 명망과 덕이 있어 촉(蜀)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영흥(永興) 원년(304) 이웅(李雄)이 성도(成都)를 공격할 때 군량이 부족하자 범장생이 양식과 군수품을 대어 도왔다. 이웅이 성도왕(成都王), 이어 황제를 칭한 뒤 범장생을 군주로 받들고자 하였으나 범장생이 굳이 사양하자, 마침내 그를 승상(丞相)에 임명하고 '범현(范賢)'으로 높이며 서산후(西山侯)에 봉하였고, 그의 부곡(部曲)에 대해서는 군역을 면제하고 조세를 스스로 거두어들이도록 하였다. 성한 정권은 이로써 "부역이 적고 백성이 부유하였다." 범장생은 이 때문에 천사도와 지방 정권이 결합한 전형적 인물로 여겨지며, 청성산에는 그의 사당과 범현묘(范賢墓)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동진(東晉) 대흥(大興) 원년(318) 세상을 떠났는데, 전하는 바로는 나이가 백여 세였다고 한다.
공헌과 영향
- 천사도 영수(領袖)의 신분으로 성한 정권을 지지하고 보좌함
- 서진 말 난세 속에서 사천(四川) 천사도를 유지함
저작
- 촉재(蜀才) 『역주(易注)』(일설에는 범장생 저작)
전설
전설: 범장생의 나이가 130여 세에 이르러 장생(長生)의 도를 얻었으므로 그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참고 문헌
- 《晋书·李雄载记》
- 《华阳国志·大同志》
- 维基百科:范长生
- 卿希泰主编《中国道教史》第一卷